본문 바로가기
레이븐: 광휘의 종언

7화 - 숨 쉬는 거울

by st공간-레이븐 2025. 6. 9.
반응형

7화 - 숨 쉬는 거울

편집자 주: 본 장은 약 6,300자 분량입니다. (24 h KST 표기)


0. T-24 h, 카시엘의 Plan β

06 : 10.
라그나 실드 5-노드 동기화가 완료된 지 불과 한 시간, 본부 작전상황판에 짙은 주황 경보가 추가되었다.

[ RED NOTICE ⸺ CASSIEL _Plan β_ ]
대상: 숨 쉬는 거울(Breathing Mirrors) 34개
위치: 서울 전역 무작위
특성: 틈새 차원 교두보 + 블루 서지(BLUE SURGE)
발현 한계: 24시간 이내

로건 장 지부장은 이마를 쓸어 내렸다.
“카시엘 놈이 라그나 실드에 정면 돌파 대신 우회로를 택했군. 서울 곳곳에 미니 포털을 뿌려서 실드를 갉아 먹겠다는 수법이야.”

레이븐이 손등 흰 까마귀 각인을 바라보았다.
어제 새로 생긴 형상은 아직도 은은히 맥동하며, 귀에 작게 속삭였다.
“거울엔 두 얼굴이 있다.”


1. 숨 쉬는 거울, 첫 보고

08 : 22. 경복궁 근정전 앞 정원.
관광객들의 소란 속에서 경복경비팀 무전이 날아들었다.
“정원 연못 수면이… 들숨날숨을 쉬듯 부풀어 오릅니다. 물고기 떼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아르카이아 1차 출동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연못 한복판에 가로 3 m 짜리 푸른 거울이 생겨 있었다.
거울은 마치 심장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주변 공기는 온도 5 °C 하락·습도 10% 상승.
하령 박사는 휴대 스펙트럼기로 측정값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드 외벽을 직접 건드리진 못하지만, 점(點) 단위 저주파로 균열을 낸다. 이게 34개면 실드 전류가 산발적으로 밀려나겠지.”

스프링이 손바닥을 펼쳐 미세 드론을 띄웠다.
“타원 궤도 30초마다 교체, 파장 430~450 nm 간섭 고조파… 내부 루트 잡아낸다.”

푸른 거울 속은 흐릿한 도서관, 혹은 긴 복도 같이 보였다.
문제는 거울 겉면에 매달린 푸른 실이었다. 실 끝은 개미 떼처럼 가느다랗게 변전소·지하철·빌딩 외벽으로 뻗어 있었다.

하운드가 이를 악물었다.
“잘라 버리면 되잖아!”
“자르면 순환 지점이 바뀌어 실드에 더 큰 파동이 생겨. 봉합해야 해.” 민지가 힘겹게 답했다.


2. 민지, 임계점에 다가서다

민지는 이명과 편두통이 한꺼번에 몰려와 귓속이 울렸다.
레이븐이 손을 붙잡았다.
“안 들려도 돼. 내 동조각으로 회로 맞춰 줄게.”
그가 각인을 감싸자, 순식간에 푸른 빛 줄기가 민지 손끝으로 전해졌다.
통증이 반으로 줄어든 대신, 레이븐의 관자놀이에서 작은 핏줄이 터졌다.

“이번엔 내가 문이 된다.” 레이븐이 낮게 중얼거렸다.
“거울 속으로?”
“네. 그리고 안쪽에서 실을 끼워 맞춰야 해. 밖에서 자르는 건 자살이야.”

로건 지부장이 귀를 기울였다.
“‘문 열기’엔 동조가 필요해. 민지가 버틸 수 없다면 레이븐 네가 전부 감당해야 한다.”
레이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를 치를 준비는 돼 있습니다.”


3. 거울 잠입 ― 첫 블루 서지

10 : 01.
레이븐은 AR-X9 대신 억압 나이프 하나와 마력 교정구 ‘에테르 캘리퍼스’를 챙겼다.
거울 표면과 자신의 각인을 맞대는 순간, 찬물에 빠진 듯 숨이 턱 막히며 시야가 파랗게 뒤집혔다.

다음 눈을 뜬 곳은 천장 높이 30 m쯤 되는 무한 복도.
바닥엔 전선과 사슬이 뒤엉켜 강줄기처럼 흘러갔고, 벽마다 낡은 거울들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저 멀리서 파란 번개가 불규칙하게 땅을 때리며 BLUE SURGE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때 경고음.
< 라그나 실드 외벽에 0.02 Ω 저항 생성 >

‘안쪽에서 잡아먹고 있군.’
레이븐은 전선 강줄기 중 굵은 세 가닥을 찾아, 캘리퍼스로 위상차를 재조정했다.
부품 없는 맥가이버식 수리―위상차 0.135°를 다시 입력.
심장의 소용돌이가 귓속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손을 떨지 않았다.

“첫 루트 봉합.”
외부 통신은 끊겼지만, 손등 흰 까마귀가 대신 반응했다.
<<< Node A ∞ 실드 연결 >>>


4. 배신자는 누구인가

14 : 15. 본부.
성수 철탑 노드에서 알 수 없는 위상 누락이 감지됐다.
값은 0.135°와 정반대인 +0.135°, 누군가 고의로 선로를 뒤집어 버린 흔적이다.
스프링이 테이블 위 모니터를 두드렸다.
“내가 각인 저장직후 검증 로그까지 봤어. 현장 요원 외엔 건드릴 사람이 없어.”
“위장작업반 중 배신자?” 하운드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령 박사가 CCTV 타임라인을 슬로모션으로 돌렸다.
“43프레임 누락. 누가 영상 자체를 지웠어.”

로건이 기초접근권 리스트를 차례로 대조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 ‘전기통신공사 사무감독’으로 위장 입장한 사람. 이름이 없다.”
민지는 편두통을 억누르며 휘청했다.
“카시엘 첩자…? 아니면 우리 안에도?”

같은 시각, 성수 철탑 하부에서 회색 점퍼를 걸친 남자가 칙― 소리를 내며 녹슨 스프레이로 룬선을 덧칠하고 있었다.
그의 목 뒤에는 큼지막한 조직 문양도, 오더 문양도 없었다.
대신 작고 낡은 아르카이아 패치가 달려 있었다.


5. 거울 속 대치 ― 카시엘의 그림자

레이븐은 블루 서지 발원지―복도 맨 끝 ‘거울강당’에 도달했다.
천장 없는 공간, 바닥엔 수백 개 거울이 나선형 바퀴처럼 회전했고, 중앙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롱로브… 그러나 얼굴엔 노끈처럼 얽힌 하얀 천이 돌아가 있었다.
“그대가… 카시엘?”
“나는 그의 그림자다.”
목소리는 다층 에코로 울렸고, 뒤이어 파란 번개가 강당을 타격했다.

이제 레이븐의 시야 상단엔 붉은 타이머가 떠 있었다.
< Residual Time inside Mirror : 07 min 30 sec >
7분 30초 안에 노드를 봉합해야 실드 전류가 되살아난다.

그림자가 손짓을 하자 네 개의 거울이 분리돼 ‘방패’처럼 떠올랐다.
레이븐은 심호흡을 하고, 억압 나이프에 흰 까마귀 각인을 겹쳤다.
이때 ‘코어 목소리’가 속삭였다.
“두 얼굴의 거울, 두 가닥의 날. 네가 첫째를 꺾고, 둘째를 반사하라.”

“알았다.”
레이븐은 나이프를 뒤집으며 복도 파견 훈련 때 익힌 사선 점프를 띄웠다.
첫 번째 거울이 파란 번개를 방출.
레이븐은 거울 틈새에 칼 끝을 박아 0.135° 역위상을 새겨 넣었다.
번개가 방향을 꺾어 두 번째 거울을 강타. 채찍을 맞은 방패 거울이 깨지면서 파란 에너지가 역류했다.

6분 12초.
그림자의 로브 자락이 뜯겨 나갔고, 그 안에서 붉은 결정나선이 꿈틀거렸다.
“그대가 보는 것은… 새벽이 아닌 황혼이다.”
그림자가 손바닥으로 거울 하나를 통째로 잡아 찢고, 거울 편물 자체를 **검(劍)**처럼 펼쳤다.
날을 휘두르는 궤적마다 복도 거울들이 산산조각.

레이븐은 본능적으로 낮은 자세로 파고들었다.
나이프 대신 손바닥.
손등 각인을 그대로 거울 검 밑면에 부딪치며, 백색 섬광에 눈이 멀었다.
팍!
남은 3분 40초, 그림자의 검이 부서졌다. 파란 번개가 대각선으로 쪼개져 거울강당 천장 없는 하늘을 찔렀다.

“네 얼굴이 드러났어!” 레이븐이 외쳤다.
그림자의 얼굴 천이 벗겨지며,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가론…?” 아니었다.
눈동자엔 은은한 골드빛 아르카이아 문양.

“배신자는… 우리 쪽?”
그림자가 웃었다.
“빛과 그림자는 원래 한몸이니라.”
레이븐은 코어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시간이 없구나.”

그는 스스로 팔뚝 안쪽을 찔러 를 거울면에 흘렸다.
피가 룬선 대신 나선을 그리며 마지막 노드를 완성… 거울강당 바닥 거울들이 회전을 멈췄다.
과부하된 서지 파동이 스스로 기절하며 꺼졌다.

붉은 타이머 00 : 1500 : 06
레이븐은 거울 속에서 뛰쳐나와 현실로 굴러떨어졌다.
포탈 구멍은 바로 뒤에서 촤악! 하고 물결치며 사라졌다.


6. 라그나 실드, 재동기화

서울 상공.
17 : 59.
붉은 결정 입자 구름이 600 m 상공에서 일시적으로 멈췄다.
라그나 실드 전류가 재가동되며, 도시 전역으로 컸던 위상 누락이 서서히 봉합.

본부 상황판에 녹색 라인이 섬광처럼 번졌다.
< Shield Integrity : 100.0 % │ Remaining Time to β Peak : 23 h 08 m >

민지가 휠체어에 앉은 채 박수를 쳤다.
“살았네, 까마귀.”
레이븐이 피로범벅 상태로 몰려들자, 하운드가 어깨를 갖다 댔다.
“마지막엔 몸으로 룬을 그렸다면서?”
“가성비 좋다고 해야 하나.” 피 웃음.

스프링이 임시 헤드셋을 벗어 던졌다.
“하지만 배신자 문제는 그대로야.”
로건은 회의록 메모리칩을 꽉 쥐었다.
“우리 내부 누군가가 ‘두 번째 얼굴’을 숨기고 있다. 카시엘 그림자, …종착역은 내일 밤일 거다.”


7. 에필로그 ― 푸른 번개의 전조

23 : 59.
서울역 고가도로 위, 가로등이 꺼지고 푸른 섬광이 파삭 튀었다.
사람들은 멈춰 서서 휴대폰을 들어 올렸지만, 화면은 전부 먹통.
붉은 비 대신 푸른 번개 ― BLU E SURGE 전조가 첫 방울처럼 도시에 흩뿌려졌다.

어둠 속에서 바람처럼 움직이는 한 그림자가 가로등 기둥에 손을 얹었다.
아르카이아 패치를 달았던 바로 그 남자.
그가 낮게 읊조렸다.
“카시엘, 기존 계획대로. 라그나 실드… 내일 자정에 깨진다.

푸른 섬광이 그의 눈동자에 춤췄다.


8화 예고
 ● 라그나 실드 카운트 T-12 h. 푸른 번개 ‘블루 서지’가 곳곳에서 자연재해로 번지며 시민 대피령 발동.
 ● 내통자를 색출하기 위한 ‘폰 히든 테스트’가 본부에서 실시되지만, 오히려 핵심 노드 두 군데가 동시 마비!
 ● 민지는 동조 후유증으로 기억 결손이 시작되고, 레이븐은 흰 까마귀에게서 **“희생 없는 공존”**이라는 낯선 비전을 본다.
 ● 카시엘은 마지막 열쇠 ‘키-플레이트 σ’를 들고, 남대문 앞에서 오더 잔당과 공개 의식을 준비한다.
 라그나 실드 붕괴 vs 붉은 비 완전 상륙 ―
 모든 선택이 8화 ‘카운트다운 제로’에서 맞부딪친다!

반응형

'레이븐: 광휘의 종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9화 - 모래폭풍 속의 사도  (0) 2025.06.11
8화 - 카운트다운 제로  (0) 2025.06.10
6화 - 라그나 실드  (0) 2025.06.08
5화 - 오블리비언 나이츠  (0) 2025.06.07
4화 - 송도 갯벌의 울림  (0) 2025.06.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