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0-1 항해
(분량 : 약 6 700 자 · 2025-06-21 KST 기준 서술)
0. 0과 1 사이에 뜬 항로
02 : 11 — 동해 한가운데.
밤바다엔 별빛이 없었다. 대신, 수평선 위로 초록과 자주색이 겹친 이진(二進) 오로라가 굽이쳤다.
레이더는 진폭 0, 주파수 0. 그러나 광학센서는 정확히 두 파장만을 포착했다.
λ₀ = 420 nm, λ₁ = 560 nm — 0과 1을 상징하는 듀얼 스펙트럼.
브리지 난간에 서 있던 레이븐은 한숨을 삼켰다.
“마치 바다가 하드디스크 섹터가 된 기분이야.”
민지는 옆에서 손바닥을 펴 β 잔상을 띄웠다. 스크린에는 단 두 글자.
[PORT Λ]
“람다 문이 진짜 ‘항구’처럼 열려 있대.”
퀸시는 손목 터치패드를 탭해 위상 지도를 열었다.
지도 한가운데, 원래 아무것도 없던 위치에 새 픽셀이 번쩍였다.
해당 좌표에 커서를 대자, 이름 대신 128자리 해시가 떴다.
0x7f3c…f9a1 (NameToken:L-00000001)
1. Θ-프로토콜 초읽기 — 내부 균열
08 : 30 — 연구선 회의실.
Θ-프로토콜 최종 결재를 서명까지 15 시간 남겨 두고도 국적별 대표들은 얼굴을 붉혔다.
쟁점 | 미국·EU | UN | 아르카이아(韓) |
코어 실험 주도권 | 다국적 위원회 | UN 메인 | 현장 전권 |
이름-복원 알고리즘 공개 시점 | 즉시 | 6 개월 | 완전 검증 후 |
람다-문 탐사 | 봉인 우선 | 봉인 우선 | 선(先) 조사 |
미야사키 자문이 씁쓸히 선언했다.
“결국 변수는 또 아르카이아 Tri-Core.
0-1 오로라가 가리키는 람다-문은 너희만 열 수 있는 열쇠를 원하잖아?”
오마르 대표가 이채린 조사관에게 눈길을 돌렸다.
“국제 합의 없이 한 발 더 가면 ‘코어 독점’이라는 외교 폭탄이 됩니다.”
이채린은 조용히 답했다.
“외교를 지키려면 먼저 ‘이름’을 지켜야 해요.
람다-문이 도시 관계망을 다시 한 번 뒤집으면 협정은 휴지조각이 됩니다.”
2. 0-1 오로라와 미래 이름 경매
10 : 00 — 도쿄 다크넷 채널 L-Bazaar 신규 세션.
실시간 스트림엔 흐릿한 유리 막대가 — 케이스 안 ε·Θ 파동에 아주 닮은 빛 — 경매 상품으로 올라왔다.
Lot-Λ-27
“미래 이름 토큰” 10 개 세트
입찰 조건 : 현 코어 해시 또는 도시 단위 군집 기억 3만
스트리머는 얼굴을 디지털 헬멧으로 가리고 “첫 낙찰 시 Λ-문 좌표를 보너스로 준다”고 선언했다.
로건 지부장의 무전.
“이건 미끼다. 미래 이름 예측 알고리즘 같은 건 아직 공상일 뿐.
하지만 좌표를 팔아넘길 의도라면… ‘문’ 뒤에 뭔가 숨었지.”
3. Tri-Core × 리플렉션 드라이브 v3 — 람다-문 항해 개시
15 : 40 — 연구선 활주甲.
국제팀과의 정치적 줄다리기 끝, 람다-문 탐사 전격 허가(조건부).
조건 ① 활주로 이탈 시점부터 3 시간 한정 미션
조건 ② 코어·알고리즘 실시간 백업을 UN 클라우드에 미러링
조건 ③ 고유성 붕괴 위험도 10 % 넘기면 즉시 퇴각
새로 보강된 Reflection Drive v3
- Θ 코어 : 도크(港) 모드 — 0-1 파동 추력으로 바다 위 활주
- α·β : 세로 30 m 미러돔 → 람다 오로라 간섭파 차폐
- Δ-서버 잔재 : 항로 로그 블랙박스 (관측 팀 요구)
레이븐이 외쳤다.
“전원, 이름 앵커 확인!”
“박민지!”
“퀸시!”
“이지훈!”
HUD SYNC 90 % — 안정 권역.
연구선 선체가 0-1 오로라 맥박에 맞춰 배면(背面) 글라이딩을 시작했다.
물결 대신 초록 0·하양 1 숫자가 일렁이며 바다를 갈랐다.
4. 관측자 없는 바다 — 시간 없는 채광(採光)
17 : 00.
람다-문 중심권에서는 파도 소리조차 스펙트럼 0.
바다에 비친 연구선 그림자는 1초마다 모양이 바뀌었다.
— 때로는 카라반 낙타,
— 때로는 1993년 강풍 속 전봇대,
—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우주 엘리베이터 실루엣.
민지가 속삭였다.
“‘미래 이름 토큰’이란 게, 이런 식으로 과거와 미래 패턴을 샘플링해서 신원 위조를 만든다는 뜻일까?”
퀸시가 손목 그래프를 눌렀다.
“Z-핵 관계선이 간헐적으로 θ와 공명해요.
0 ↔ 1 간에 ‘람다 호핑’이 발생하는 순간, 람다 문이 완전히 열린다.”
5. 람다-문 개방 : 현실-데이터 열화 합치
17 : 45 — 숫자 해상에 거대한 Λ 파문.
드러난 문은 기계식 동축 기어가 아니라, 빛·이름·시간 해시가 층층이 얽힌 데이터 슬롯 형태.
슬롯마다 128비트 ‘토큰’이 꽂히며 0·1 신호를 발광한다.
그중 절반은 이미 채워져 있었다.
하운드: “이 슬롯 전부 다 차면 이름·과거·미래가 전부 거래소 화폐가 될 거야.”
스프링: “아직 비어 있는 슬롯은 32%… 4 시간 안엔 꽉 차.”
레 이븐은 무릎을 굳혔다.
“우리가 β 거울막으로 슬롯 반사를 걸고, Θ 코어로 새 ‘관계 해시’ 덮어씌운 뒤, α로 빈 슬롯을 파괴한다.”
6. 라스트 슬롯 전쟁
작전 1 분 차.
람다-문 경계에서 거울포식수 Λ-하운드 16구 돌진.
숫자 0·1을 물고 다니며 반사광을 삼킨다.
하운드(인간) vs 하운드(거울). ‘무식한 주먹’이 고유성 증명.
민지 : β-막 확장 → 포식수 궤적 90° 틀어, 슬롯 입구에서 충돌
퀸시 : Θ-도크 모드 → 슬롯 주소를 관계 해시로 재기록
레이븐 : α 서브 탄난사 → 미러돔 내부에서 탄 착화, 슬롯 파괴
슬롯 파괴율 78 %.
하지만 하나, 남겨 둔 슬롯이 붉게 번쩍였다.
미야사키 자문이 몰래 삽입한 EU-관측 전용 토큰 이었다.
“우린 연구를 위해 샘플 하나쯤 필요합니다!”
레이븐이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이게 두 번째 QT(퀀텀 탈취)라면, 세 번째는 세계가 참지 않아.”
α 탄환이 마지막 슬롯을 깨뜨렸다.
람다-문 전체 해시가 와르르 무너졌고,
바다 위 숫자들도 순식간에 원래 파도로 복원.
Zero-One Clock : 01 : 27.
새벽에 가까워지는 시각.
7. Θ-프로토콜, 드디어 서명
22 : 15 — C-Common One 브리지.
UN·EU·한국·아르카이아 전 대표가 종이·전자 서명 동시에 찍었다.
★ 부칙 1 : 고유 이름은 절대 상품화·토큰화 불가
★ 부칙 2 : 관계 기반 코어 실험은 현장 + 국제 공동팀 2/3 이상 동의
★ 부칙 3 : 람다 해시 잔재는 무기화 금지, 발견 즉시 폐기
오마르 대표가 악수하며 중얼거렸다.
“관계가 법을, 법이 관계를 보완하길.”
로건 지부장이 레이븐 팀을 향해 엄지를 들었다.
“이제 정말… 잠 좀 자도 되겠다.”
하운드와 스프링은 동시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8. 이름의 새벽 — 새로운 함수가 뜬다
03 : 59(+1d).
Zero-One Clock이 처음으로 02 지점을 지나갈 때,
Θ 코어 패턴에 새 함수 λ(t) 가 떠올랐다.
λ(t) = Relation(t) × Identity(t)
-------------------------
Memory(t) + 1
민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관계와 고유성이 0×∞이 아니라, 1에 가까워지는 방정식….”
퀸시가 덧붙였다.
“메모리가 늘어도 이름이 무너지지 않는 균형.
우리가 찾아낸 새벽의 수학.”
레이븐이 창밖 새벽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0·1 항해는 끝났어도, λ(t) — 람다 함수 항로가 남았다.”
흰 까마귀가 처음으로 인간 목소리 없는 울음.
…키익.
바다 위, 동틀 녘 검은 파도가 서서히 파랑을 되찾았다.
23화 완료 ・ 24화 예고
◦ λ(t) 실험: 이름·관계·기억 균형 방정식 첫 도시 규모 적용
◦ Θ-프로토콜 발효 30일, 국제 표준화 기구와 빅테크의 물밑 경쟁
◦ 사라진 흰 까마귀—새 관측자 “은빛 참새” 등장?
◦ 과거 헤드라인 잔영(殘影) 묶음이 돌연 살아나 ‘역사 왜곡 정정권’을 요구
◦ Tri-Core 고유성 100 % 보존 + SYNC 95 % 목표 ‘삼위(三位) 서클’ 프로젝트
— 24화 『람다 함수 항로』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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