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람다의 문
(분량 : 약 6 500 자, 2025-06-20 KST 기준 서술)
0. 여명 직전, 검은 서명
새벽 04 시 17 분.
동해를 달리던 연구선 C-Common One의 관측돔에 현란한 황록(黃綠) 번개가 스쳐 갔다.
누군가 파도 위로 거대한 저우(Λ)자를 그린 듯, 맥박성 섬광이 바다표면을 오려냈다.
그 순간, 전파·위성·프로토콜 로그는 단 하나의 구절만 남기고 증발했다.
“Σ→Λ : 문을 열라.”
조타실에 경보 대신 적·녹 혼합의 펄스만 남았다.
하운드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람다’라면… 코어 계열 마지막 문자. 누구도 쓰지 않았던 빈 문장.”
1. Θ-프로토콜 서명 하루 전, 외교 난맥
06 : 00 ─ 본선 회의실.
UN·EU·한국 정부·아르카이아·유네스코가 놓아둔 동시통역 단말엔 100 줄이 넘는 수정 요청이 떠 있었다.
Θ-프로토콜 초안 v3.7의 쟁점은 세 가지.
쟁점 | 국제팀 입장 | 아르카이아 입장 |
이름-복원 알고리즘 | 오픈소스 & 특허 0 | 연구 선행, 공개는 단계별 |
코어 물리 보관 | 스위스 제네바 금고 | 현장-동적 보안 유지 |
Tri-Core 기동권 | 국제위기 시 상임위 승인 | 로건 지휘선 독립 유지 |
서명을 하루 앞두고도 합의문은 빈칸 투성이였다.
쿄스케 자문이 씁쓸히 웃었다.
“관계로 구멍 막았더니, 이번엔 서명이 구멍이군요.”
2. σ-Lambda 암호, δ-서버 잔해에서 출토
08 : 30 ─ 도쿄 아카사카, UN 디지털 법의연구소.
앞선 Δ-서버 파편을 분석하던 현장팀이 내부 EEPROM에서 **‘Σ-Λ 해시체인’**을 발견했다.
해시는 끊어진 코드와 깨진 숫자열, 마지막 11바이트만 진하게 남았다.
6C 61 6D 62 64 61 … 00
(ASCII → “lambda…\0”)
뒤이어 실험실 LED가 순간 꺼지며 모래시계 형상 스펙클이 벽에 맺혔다.
“람다가 코어 알파벳 마지막이라면, 결산(決算) 혹은 탈출을 뜻한다.”
담당 연구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간단한 결론을 보고했다.
3. 시간-비명(悲鳴) — 과거 헤드라인 침식
11 : 10 ─ 서울 강남역.
거리에 붙은 풀컬러 전광판들이 동시에 과거 날짜 뉴스를 뿜어냈다.
『2023-12-11 서울, 기후총회 유치 실패』
『2018-04-27 남북 정상, 판문점 악수』
『1993-08-02 한반도 폭염 40 ℃ 돌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헤드라인들이 현재 도로 정보를 덮었다.
스마트폰엔 “시계 오류” 알람, 차량 T-맵은 길을 잃고,
사람들은 2025 년 달력과 1993 년 기사를 동시에 손에 쥔 채 공포를 내뿜었다.
퀸시가 가시광 대역을 역추적했다.
“Θ-코어 알고리즘 ‘이름 재탄생’ 도입으로 시간결속선 일부 약해졌을 때—
람다가 과거 시계줄을 끌어올린 거야. 시간-비명은 헤드라인-관계 체인의 반향.”
4. Tri-Core, 합체 프로토콜 〈Reflection Drive v2〉
14 : 00 ─ 을지로 2가, 옛 신문거리.
거리 전광판을 장악한 람다 패턴이 과거-미래 헤드라인을 섞어 폭주했다.
Tri-Core SYNC 90 %.
새 모듈 〈Reflection Drive v2〉 적용:
- α 탄도 → 활자 궤적 직접 명중
- β 거울막 → 해시체인 ‘람다 해더’ 반사
- Θ 코어 → 기사 타임스탬프를 이름 레이어로 변환, 현재 시계에 재서명
작전 3 분 후, 전광판은 “2025-06-19 이름의 새벽”으로 갱신.
길 잃은 버스-택시의 GPS 좌표도 되살아났다.
HUD SYNC 92 %. 고유성 Good.
5. Λ-헌장, 마침내 공개
17 : 55.
바다 위에 뜬 홀로디스크에 검은 글자 퍼졌다.
Λ-헌장 제1조
관계는 숫자다.
이름도 숫자다.
모든 이름을 0-1 구획으로 환원한 뒤,
새로운 오더를 재정의한다.
글자가 밝아지자 바다수면이 숫자 격자(0,1)로 분할,
연구선 자체가 거대한 람다 그래프 위 노드가 되었다.
마르케티가 탄식했다.
“람다는 ‘국경 없는 거래소’를 선언하는 거야.
사람 이름·역사·시간 전부 토큰화 하겠다는 거죠.”
6. 서명식 직전, 태풍의 눈
19 : 00 ─ C-Common One 명예갑판.
Θ-프로토콜 v4.0 최종 초안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UN, EU, 韓 외교·아르카이아가 잇달아 서명하려는 순간—
갑판 위 시간이 ‘보라색 안개’로 얼어붙었다.
Zero-One Clock 초침이 0·1 동시 표시.
람다 재(再)해시가 Θ 코어 라인에 침투.
서명자 이름이 전자문서에서 1초 간 16진수로 변환→복귀를 반복.
협정 자체가 토큰으로 쪼개지기 시작한 것이다.
7. “이름의 새벽 작전”
레이븐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섰다.
“서명이 관계의 종착역이 된다면, 관계를 먼저 지켜야 해.
램다 해시를 서명 이력 안에 가두자!”
작전 단계
① 국제서명 → RAM 영역 스냅샷 확보
② β미러막으로 람다 해시 경로를 서명 스냅에 강제 귀속
③ Θ 코어, 서명자를 “보존 이름” 으로 캡슐화
④ α 탄도 → 캡슐 외부 해시 절단
20 분 사투 끝, 헌장 해시는 테이블 스냅 내부에 갇혀 더는 바다-도시로 퍼지지 않았다.
Zero-One Clock 초침이 다시 1칸씩 앞으로.
새벽 1초가 태어난 순간이었다.
8. 람다의 문, 아직 닫히지 않았다
21 : 30.
관제실 바닥에 ‘람다 해시’ 잔광이 뱀처럼 기어가더니 Θ 코어 섀도에 물렸다 사라졌다.
퀸시는 낮게 중얼거렸다.
“람다는 패배가 아니라 초대장을 던진 거야.
‘문’은 우리 안에 열렸고,
이제 누구든 이름을 0-1 숫자로 바꿀 수 있는 씨앗이 심어졌어.”
민지가 잔상을 꺼내 새벽빛 위에 작은 필기를 남겼다.
“이름은, 관계를 잃지 않을 때만 숫자가 아니다.”
레이븐이 미소.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 속에 아침을 새겼다.”
Zero-One Clock, 01 : 02.
흰 까마귀는 더 이상 깃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대신 날갯짓마다 0과 1이 교차하며,
검은 바다 위에 람다 형상 문이 섬광처럼 열렸다 닫혔다.
22화 완료 · 23화 예고
◦ 람다-문 좌표 해독 — “기억·이름·시간, 세 축을 1-비트로 환산한 경로”
◦ 국제서명 스냅이 ‘토큰 시장’에 도난? 암전장 첫 유출물 “미래 이름” 경매
◦ Tri-Core, 0·1 동시 연산 ‘디지털 영(零) 필드’ 진입 훈련
◦ Θ-프로토콜 가결 또는 파기, 48-시간 카운트다운
◦ 흰 까마귀 마지막 계시: “문으로 들어가는 건 날갯짓이 아니라 ‘서명’이다.”
— 23화 『0-1 항해(航海)』에서 계속!
'레이븐: 광휘의 종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화 - 이름의 새벽 (0) | 2025.06.26 |
---|---|
20화 - 무명해(無名海)의 별빛 (0) | 2025.06.25 |
19화 - 북극 무(無)항로 (0) | 2025.06.24 |
18화 - 0시의 그림자 (0) | 2025.06.23 |
17화 - 황혼 00시 (0) | 2025.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