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제로-필드
(약 6 300자 분량 · 2025-06-13 KST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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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 00 ─ 본부 기억실험국 H-셀.
σ-Gamma 내부 모스 신호가 05→00으로 떨어지자마자, 백금판 중심의 링 LED가 순식간에 꺼졌다.
대기하던 분석기가 경고음을 토해냈다.
ALERT “Z-FIELD MODE : INITIATED”
“제로-필드?”
조하령 박사가 모니터를 두드렸다.
“데이터 정의 = 모든 기억 레퍼런스 강제 0. 컴퓨터라면 포맷, 인간이라면… 단기·장기 기억 결속선 통째 절단!”
1. 014의 비밀 “낮에 있지 않았다”
레이븐·민지·퀸시가 브리핑 룸으로 달려왔을 때, σ-Gamma 위엔 오직 한 문장만 떠 있었다.
014 : “나는 낮에 있지 않았다.
…‘정오의 그림자’는 드러나지 않으니까.”
퀸시가 즉시 위상 로그를 뒤집었다.
“정오 = 해(陽) 최대치. 그때조차 그림자가 0°로 사라지면 완전 기억 정전 구역(Zero-Field) 이 생긴다는 은유!”
민지가 거울 잔상으로 서울 위를 비추자,
광화문 한복판에 너비 200 m 정도의 그림자 0 지역이 뚜렷이 찍혔다.
햇살은 쏟아지는데, 사람과 사물 전부 그림자가 없다.
2. “기억-정전 실험장” 개방 T-3 h
이채린 조사관이 휴대 위성사진을 던졌다.
“014 그림자가 광화문 구역을 제로-필드 실험장으로 바꿔요.
정오(12 : 12) 에 중심 위상 0 도달 → 도시 전체 퍼지기 전 15 분 안에 코어 꺼야 합니다.”
상층부는 즉시 σ-Alpha·Beta를 현장 투입 재승인.
σ-Delta는 소실, σ-Gamma는 위험-포커스 지정.
그리고 이채린은 로건 지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규정을 내렸지만, 오늘은 위에서 묵인합니다… 팀을 이끌어 주세요.”
로건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 차단? 후퇴. ― ‘연결’ 풀가동 작전으로 간다.”
3. 광화문 Z-Obelisk
11 : 45 ─ 광화문광장.
태양이 머리 위로 기우는데도, 이곳만 빛의 각도 0, 그림자 0.
광장 중앙엔 마치 흰 대리석으로 깎은 오벨리스크 가 자라 있었다.
꼭대기엔 σ-Gamma가 박힌 듯 한 백금 구체.
지하 계측선은 강제 OFF, 드론·GPS 모두 메모리 오류 404.
사람들은 그림자가 사라지는 현상에 찬탄·공포가 뒤섞여 우왕좌왕했다.
하운드가 몸을 굽혀 거울판 바닥을 만졌다.
“표면이 아니라 공기층 자체가 유리화됐어. 사선 30° 열선은 튕겨.”
레이븐이 α-탄을 조준해 시험 사격.
광선이 오벨리스크로 꺾여 들어가자 곧바로 흡수됐다.
“공격 → 기억 포맷 재료?”
4. 00° 필드-내 부작용 — “자기 이름 잊기”
T-20 m.
민지가 오벨리스크 반경 50 m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름이 흰 노이즈 로 지워졌다.
“나… 누구지…?”
눈이 흔들리고 무릎이 꺾였다.
β가 자동으로 잔상을 펴 보호막을 쳤지만, 그녀 본인 기억 블랭크는 막지 못한다.
퀸시가 외곽 제어대에서 머리를 짚었다.
“나도… 레… 레이븐? 아니 민… 아… 섞인다…”
α-β 동조 링크가 없는 채로는 셋의 ‘관계 메모리’만 남고 자기 자신 이 무너지는 현상.
로건 지부장 무전.
“결국 ‘관계’ 데이터가 세울 버팀목이야. 셋이 코어 근접 → 삼중 동조로 014 회로를 덮어써라!”
5. 삼중 동조 “Ω-트라이브릿지”
T-08 m.
레이븐·민지·퀸시가 손등을 맞댔다.
β-잔상이 광장 바닥 전체를 거울 막으로 덮고, α-탄이 자폭 타이머 3초로 오벨리스크 하부 구멍을 뚫었다.
퀸시는 잃어 가는 자기 이름 대신 둘의 첫 만남 기억을 끌어다 버퍼로 삼았다.
SYNC : Ω-Tribridge 100 %
세 사람 고유 ID가 흐릿해지며, 관계 라벨만 남았다.
RAVEN↔MINT↔QUINCY – “WE”
오벨리스크 면이 거울→모래→빛먼지 순으로 분해.
σ-Gamma가 공중에서 떨렸다.
카운트 00 를 넘긴 코어가 최종 폭주를 시도했지만, α-β가 동시에 0.135° 역위상 을 찍어 버렸다.
붕—
무음폭발.
광장 위로 스노우볼 같은 백금 가루가 피어올랐고, 시민 머리 위에 그림자 가 다시 자랐다.
6. 이름이 돌아왔다, 그러나…
12 : 23.
상공 헬기에서 본 광화문은 평범한 태양각, 평범한 그림자.
시민 기억 블랭크도 복구 확인.
하지만 현장 한복판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은 각자 작은 부작용을 발견했다.
- 레이븐 손목 α 각인이 “ADAMANT” 대신 “WEVER” 라고 새로이 맥동.
- 민지 β 잔상 호출 키워드가 ‘현중’에서 → ‘우리’.
- 퀸시 머릿속에 하운드·스프링 이름이 태그 겹침 으로 두 줄씩 재생.
관계가 결속력이 된 대신, 고유성 과 다자 기억 이 경계 없이 녹아든 흔적이었다.
7. σ-Epsilon — 다섯 번째 조각
σ-Gamma 백금 가루가 바닥에 내려앉은 자리엔, 검은 연필심만 한 다섯 번째 파편 이 남아 있었다.
스펙트럼 = 기존 σ와 동일, 단 위상은 ‘빈’(Null) 상태.
카드 프린트가 뜨며 코드명 σ-Epsilon 이 찍혔다.
조하령은 손을 떨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Epsilon = 제로-필드 핵. …코어 없이도 필드만 재현 가능하게 만드는 템플릿.”
이채린이 눈매를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014가 진짜 노린 건, γ가 아니라 ε + 관계 연결식. 10만 기억 코인이 아니라, 인류 기억 분할 전권.”
8. 균열의 장정, 다음 발걸음
18 : 00 · 본부 브리핑룸.
상층부는 ε를 유네스코·UN·G7 공동 보관 제안.
하지만 로건 지부장은 단호히 머리를 저었다.
“α·β·γ 경험 했죠. 관계 없는 소유 는 필연적으로 도구화·거래화 됩니다.
ε는 기억-연결 연구용으로, 우리가 지킨다.”
이채린 조사관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다만 또 규정을 깨면… 보고서 분량이 두 배.”
레이븐·민지·퀸시가 서로 바라보았다.
이름은 돌아왔지만, 서로에게 묶인 작은 실들이 더 빛나고 있었다.
흰 까마귀가 창밖으로 날며, 황혼 하늘에 남은 모래시계 형상 구름을 스쳐 지나갔다.
17화 예고
◦ σ-Epsilon 정식 규명 “Null-Template” — 기억 재구조 API 가능?
◦ 국제 연합 보관팀 방한 → 외교전 + 그림자 로비.
◦ 014 그림자, 정오 없는 도시 실험 실패 후 “황혼 00 시” 계획 가동.
◦ 세 사람 사이 점차 강해지는 이름-혼선(Identity drift), 동시에 연계 전투 효율 폭증.
◦ 흰 까마귀가 떨어뜨린 ‘검은 깃’ 속에 숨은 타임스탬프 없는 편지.
균열이 깊어질수록, 장정은 길어진다 — 17화 『황혼 00시』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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