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사막의 거울탑
(약 6 100자 분량 · 24 h KST 기준)
0. 활주로 47-Delta, 출발
06 : 15 ─ 카자흐스탄 남부 황무지, 비밀 활주로 47-Delta.
미군에서 퇴역해 민항 코드를 서류상만 유지하는 온보드 수송기 **C-23B “유니콘”**이 모래 바람 속에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븐, 민지, 스프링, 하운드 그리고 팝업으로 합류한 현장 의료·분석 요원 퀸시가 탑승 뒤 정거핀을 뽑자마자 프로펠러가 낮은 비명을 토했다.
로건(무전)
“좌표: 39° 07′ N / 86° 45′ E. 타클라마칸 서부 분지 125-킬로 사역(射域) 내에서 ‘Sandwalker 신호’ 잡혔다.
내부에 기지(基址) 타입 ‘유령 탑’ 존재 가능성 71 %. 네 시간 후 현지 교신 절단된다. 알아서 살아서 돌아와.”
스프링이 순간 움찔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주문이 제일 어렵지.”
레이븐은 AR-X9을 무릎 위에 눕힌 채, 민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었다.
민지는 깜박이며 레이븐 손목을 더듬었다.
“…어디 가는 거죠?”
“놀러 가자, 사막에.”
“레…이븐? 또 까먹었네.”
레이븐은 미소만 지었다. 손등 흰 까마귀 각인이 파르르 떨려, 그의 조용한 거짓말을 대신 울렸다.
1. Sandwalker 신호
11 : 02 ─ 타클라마칸 분지 상공 1 800 m.
기내 센서가 붉은 비 잔재 입자와 실리카 사막 먼지가 섞인 독특한 변수 ΔQ를 포착했다.
퀸시가 테이블에 펼친 휴대 분석기에 그래프를 띄웠다.
“ΔQ가 오차범위 0.08 %… 바로 σ-플레이트에서 빠져 있었던 그 수치.”
하운드가 이를 드러냈다.
“카시엘이 진짜로 저 조각을 여기에 꽂은 거야.”
스프링은 특수 카메라로 찍어 둔 δ-입자 궤적을 확대했다.
“좌표는 사막 복판 ‘R-Sector’… 지도엔 비어 있는데, _구 소련 인공위성 사진_엔 흐릿한 탑 그림자가 잡혀 있어.”
2. 착륙지점 N-21
13 : 30 ─ 수송기는 모래 언덕 길게 늘어선 해면처럼 물결치는 지대에 비상 착륙했다.
바람 속 모래가 총열을 두드리며 석음(石音)을 냈다.
민지는 마스크를 고쳐 쓰며 눈을 부비었다.
“지금… 이름이?”
“박민지.”
“다행이네. 아직 안 잊었네.”
팀은 지하 GPS 축차 거리계와 고대(古代) 카라반 루트 기록을 엮어 코스 12 km를 도보로 이동했다.
그늘 하나 없는 사막 열기에 전자 장비는 계속 성능이 떨어졌고, 하운드의 가이거 변형기엔 붉은 경보가 세 번 떴다.
“붉은 비 잔재가 _모래 입자_에 흡착하면 방사선 비슷한 이온 파장을 낸대. 우리 셀카 찍어도 빨갛게 나오겠어.”
3. 모래골렘의 매복
15 : 05.
진군 대열 가장 앞, 레이븐이 모래 언덕 경사에 두 줄 발자국 이외 **‘V자 홈’**을 발견했다.
— 모래가 마른 날강물처럼 옆으로 푹 꺼져 있는 자리.
그 순간, 바람이 아닌 무언가 모래를 품어 올리며 치솟았다.
사막 골렘 ― “샤이닝 둔(燦沙獣)”
키 3.5 m, 몸통은 붉은 비 결정과 실리카가 미세 층을 이룬 껍질, 손·발은 사슬 뿌리가 얽힌 구조.
마치 살아 있는 거울 파편 덩어리.
레이븐이 AR-X9 챔버를 빛나게 돌렸다.
“하운드, 좌측 갈빗대 받아! 스프링, 드론 공격 전자장 껍질 억제!”
하운드는 모래판에서 미끄러지며 골렘 다리 한쪽에 건틀렛 초강력 잭을 꽂았다.
철썩, 번개처럼 반동이 올라오는 순간—
골렘의 손톱이 하운드 방패를 박살내며 파편을 튕겼다.
민지는 귀 찢는 통증에 몸을 숙였지만, 남은 의식으로 σ-플레이트를 꺼내 작은 비광(微光)을 일으켰다.
σ-플레이트 빛이 골렘 껍질에 닿자 석영 결정이 탑-탑- 소리를 내며 균열.
레이븐은 바로 역위상 0.135°를 나이프로 써넣었다.
찰칵—산산이 부서져 내려앉는 모래.
샤이닝 둔 잔해 사이에는 은빛 핏줄 같은 선이 남았다.
퀸시가 분석기로 긁어내자, σ-플레이트 잔류파와 동일.
“골렘 자체가 σ-조각의 _기타조각_을 먹고 자란 거야.”
스프링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렇게 서너 마리면 솔직히 버틸 만한데, 탑 근처엔 떼로 있을 거라고.”
4. 복수의 동조, 그리고 기억 백업 의식
17 : 50 ― 모래붕 사구 저편에서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40 m 남짓, 누더기처럼 겹겹이 기왓장 껍질이 둘러싸인 탑.
활처럼 굽은 문 위엔 무너진 폐탄광 철궤도와 비슷한 사다리꼴 골조가 삐죽삐죽 나 있었다.
하령 박사가 보낸 항공사진엔 없는 “거울탑”이 실제로 시야에 잡혔다.
스프링이 손목 단말 신호를 본부로 반복 전송했지만, 신호는 탑에서 튕겨 나와 계속 루프됐다.
레이븐은 싸늘한 땀을 훔쳤다.
“σ-플레이트 잔류파가 탑 안에서 ‘정상 파장’처럼 여우불 띠를 만들고 있어. 누구 한 명은 탑 안으로 동조 라인을 직접 심어야 해.”
민지가 휘청이며 말 끊었다.
“기억 백업 의식… 나한테 써.”
퀸시가 고개를 저었다.
“본질은 뇌 신호를 σ-코어에 ‘Export’ 하는 거라서, 동조 안 하면 기억을 넘길 수 없어. 그리고 ‘뇌결절 위험’이….”
민지는 퀸시 손목을 딱 잡았다.
“붉은 비 때도 그랬어. …내가 ‘불안정’ 이라서 열쇠가 될 수 있었다고.”
레이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 아래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이 속삭였다.
민지를 보낼 순 없어. 하지만 나 홀로는 문·열쇠 모두 못 된다.
그때, 흰 까마귀가 탑 기슭 돌바람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 “둘이 문이 되는 길, 셋이 열쇠가 된다.”
셋?
퀸시가 헬멧을 벗으며 씩 웃었다.
“내 뇌파는 ‘헤더-프리’, 루트 신경 회로 없어서 간섭에 강해. 내가 백업 루트 될 수 있어.”
스프링이 놀랐지만 곧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운드가 대형 건틀렛을 조여 끼었다.
“난 바깥에서 골렘 때를 막는다. …이번엔 조금 신사적으로.”
5. 거울탑, 내벽 동조
20 : 05.
민지·레이븐·퀸시는 작은 동굴 냄새가 섞인 탑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는 가로·세로 9 m 육면체가 층층이 쌓였고, 벽마다 흐릿한 거울 조각이 몸속 혈관처럼 빛을 흘렸다.
가장 중심엔 반투명 코어 ─ σ 결손 조각이 박혀 있었다.
레이븐이 흰 까마귀 각인을 조각 표면에 맞댔다.
순간 맥동이 레이븐→민지→퀸시로 순환하며 삼중 동조(Triple Sync) 권한을 형성.
Sync ω-Raven / π-Mint / φ-Quincy : 100 %
레이븐 시야엔 세 사람 기억 파편이 뜨거운 실선으로 겹쳤다.
· 레이븐: 특공대 옥상 첫 총성
· 민지: PC방 첫 만남, 라면 김 수증기
· 퀸시: 이름도 없는 실험실 아이, 첫 바깥 풍경
탑 내벽 거울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 “모래폭풍 사도, 카시엘 아닌 014번 연구조교.
— 그리고 σ-플레이트는 *모든 기억 의 저장고가 된다.”*
잠깐. 연구조교 014.
레이븐은 즉시 머릿속 퍼즐을 맞췄다.
“배신자… 서울 노드 뒤집었던 사람, 014번인 게 확실해.”
민지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014번 최초 설계자는… σ-플레이트 제조원과 같은 인물. 자기 물건 다시 가지려고 돌아온 거야.”
6. 모래폭풍 사도 등장
동시에 탑 외벽을 지키던 하운드와 스프링은, 사구 넘어 초거대 샌드 골렘을 마주쳤다.
키 12 m, 등판엔 아르카이아 로고를 무참히 긁어낸 흔적.
그 앞에,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내 이름은 델타-014.”
그의 목 뒤에는 아직도 아르카이아 ‘H-급 연구보조’ 문양이 옛날 잉크처럼 바래 있었다.
“조직이 날 버렸지. 그렇다면 새 조율자를 만드는 재미라도 봐야겠군.”
샌드 골렘이 팔을 들어 사막 바람을 집어올렸다.
모래 다발이 번개처럼 뒤틀리며 살점 같은 결정 피라밋을 뿜어냈다.
하운드가 몸을 돌려 스프링을 감싸며 뛰었다.
대신 건틀렛 두 번째 켤레가 산산이 부서졌다.
하운드가 피를 삼키며 웃었다.
“무식해서 다행이지.”
7. 코어 자폭 vs 기억 백업
탑 내부.
σ-코어가 승화하는 붉은 빛을 토해내며 4-초 간격 파열음을 냈다.
델타-014의 목소리가 공간 스피커처럼 울렸다.
“σ-코어가 인간 기억을 완전히 백업하면, 그 순간 폭주시켜서 라그나 실드 회로를 갈아버린다!”
민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뇌 안에서 ‘백업되지 않은 기억’이 반짝이는 별자리처럼 끊어졌다 이어졌다.
레이븐은 칼끝을 코어 측면에 고정했다.
“코어를 꺼낸다.”
퀸시가 막았다.
“꺼내면 반동으로 내부가 붕괴! 둘 다 못 나와!”
“차라리, 기억 백업이 나을 수도 있어.” 민지가 속삭였다.
“네 기억이 전부 σ로 넘어가면… ‘너’는?”
민지는 살짝 웃었다.
“그럼 σ-코어가 날 대신 살아 있겠지. …까먹을 걱정은 없잖아.”
레이븐은 눈을 감았다.
흰 까마귀가 날개를 가만히 접고, 볼 수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억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에 살아남는다.”
레이븐은 칼 대신 손바닥을 코어에 포갰다.
“세 명 기억을 나눠 백업하자. 한 사람당 33 %. …민지 기억도, 나와 퀸시가 나눠 가진다.”
민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나는?”
“너도 우리 일부 기억을 가져.”
퀸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 백업. 난 찬성.”
세 손바닥이 코어를 동시에 잡았다.
— “분할 백업 프로토콜 ∑-33”
모래 탑 전체가 번쩍이며 파도처럼 움직였고, 붉은 비 조각들이 첫눈 결정처럼 허공에서 녹아 사라졌다.
8. 샌드 골렘 붕괴, 델타-014의 최후
밖에선 샌드 골렘이 탑 지붕을 뚫고 팔을 들이밀다가, 순식간에 강풍처럼 분해됐다.
기억 분할 파장이 골렘 결합 핵을 역상 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균열 속 델타-014가 뒤로 비틀거리며 외쳤다.
“너희 기억이 섞이면… 인간 정체성을 잃—”
그러나 모래 폭풍 소음이 말을 삼켰다.
델타-014의 몸에서 σ-조각이 빠져나오며 생체 신경망이 붕괴.
그는 사구 모래 속으로 그대로 꺼져버렸다.
9. 라스트 씬 ― 서로의 기억으로
23 : 10.
거울탑은 진공처럼 허공을 뒤틀며 모래에 파묻혔고, 해방된 σ-플레이트는 백금빛으로 맥동하다 세 조각 으로 갈라졌다.
· σ-Alpha (레이븐)
· σ-Beta (민지)
· σ-Gamma (퀸시)
민지가 어깨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왜 하필… 33 %?”
레이븐이 얼굴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세 사람 기억 합치면 100 %.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진 않지만, 셋이 모이면 잊지 않을 거야.”
퀸시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남은 1 %는?”
“흰 까마귀.” 레이븐이 손바닥 위 각인을 톡 건드렸다. “연결되지 않은 기억, 모두 기록해 주는 방관자.”
세 사람은 사막 냄새의 밤바람을 맞으며 수송기 호출 플레어를 쏘았다.
멀리서 본부 연공 드론이 신호를 잡았다는 통신이 들려왔다.
“현중이 라면 비밀 레시피 기억해?”
“물론.”
민지가 가늘게 눈웃음을 지었다.
“라면은 둘이 끓일 때 맛있다. …셋이 끓이면 어떨까?”
퀸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싱겁겠지만, 그래도 잊혀지진 않겠지.”
머리 위엔 별이 유난히 컸다.
흰 까마귀가 별빛 틈으로 솟구쳐 다시 셋 위를 맴돌았다.
바람은 먼 길을 준비하라는 듯 부드럽게, 그러나 쉼 없이 불었다.
11화 예고
◦ 분할된 σ-플레이트, 각각 다른 기능을 갖춘 채 본부로 회수.
◦ 기억 혼합 부작용: 레이븐에게 불현듯 스프링·하운드의 과거 단편이 섞여 나타나고, 퀸시는 레이븐의 전투본능 플래시백을 겪는다.
◦ 민지의 블랭크는 줄어들었지만 대신 ‘거울 잔상’으로 현실과 꿈을 혼동.
◦ 카시엘 본체의 생존 설과, 경기 평택항에 나타난 거울 포식수(鏡獸) ‘헬리오스 하운드’.
◦ 아르카이아 내부 정치가 σ-플레이트 지분을 놓고 갈라서며, 로건 지부장에게 청문 요청서 접수.
이제 세계는 단순 방어가 아니라 ‘기억과 거울의 새 질서’ 속으로 발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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